2008/01/19 22:01

꼬꼬마들이 외가에서 보름간 보내고 돌아오는 어제. 우린 몇 시간 남지 않은 금쪽같은 평화의 시간을 소중히 보내기 위해 늘 오전일 끝내고 가던 운동을 안 가고 각자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늘 토요일과 일요일은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어서 운동을 하러 가지 않았지만, 어제 쉬었음으로 오늘은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국제공항답지 않게 이용하는 사람이 적다고 뉴스에 자주 나오는 무안국제공항. 그곳으로 향하는 넓은 공항도로의 시작지점 옆으로는 농장으로 향하는 구 길이 있다. 공항도로 옆으로 갈라져 나온 구 길로 들어서는 입구는 꽤 경사가 있는 굴다리 내리막길이다. 약간의 커브가 있는 내리막길이 40여 미터 되다가 굴다리 있는 곳을 기점으로 다시 점점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때문에 가장 낮은 지점인 굴다리 바로 밑에는 눈이나 비온 후엔 언제나 물이 고여 있기 마련이었고, 가뜩이나 다리의 그늘이 지는 곳이기 때문에 물이 마르기도 꽤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꽤 맑은 날이었기에 그곳이 빙판일 것이란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차를 몰고 내리막길을 쌩 하니 내려가다 ‘미끌’함에 놀랐던 것이 이틀 전이었다.
조심해야겠구나...

마침 오늘은 무안의 5일장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에 삼촌과 나는 운동 후에 장에 들려 만두와 순대 찹쌀떡 등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중 공항도로 옆의 구 길로 향하는 내리막길에서 순간 ‘헉’ 할 수밖에 없었다.(사실 ‘웜매’라고 소릴 질렀다) 굴다리를 조금 지나서 어떤 할머니가 길 한복판에 쓰러져 계셨고, 그 조금 앞에 오토바이역시 내동그라져 있었다. 모처럼 날이 좀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굴다리 바로 아래는 역시나 꽁꽁 얼어있었다. 그 할머니는 오토바이를 몰고 굴다리를 통과하려다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내리막길이라 속도가 더 붙었을 것이고,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라고 오토바이를 조심스레 천천히 몰던 분이 아니셨다. 넘어지면서 얼굴을 땅에 크게 부딪히셨던지 얼굴은 피투성이인 채로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만큼 퉁퉁 부어있었고 의식도 거의 없어보였다. 주변엔 안경까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너무나 놀랐기 때문에 가슴에 안고 있던 먹을거리가 떨어져 뒤집어지는 줄도 몰랐다. 핸드폰을 안 가져온 삼촌은 차에서 내려 빨리 신고하라고 소리쳤지만 나 역시 전화기를 챙겨오지 못했었다. 삼촌은 다시 차에 올라 가까운 인가가 있는 곳으로 서둘러 향했고, 난 차에서 내려 그 아주머니를 잠시 살펴보고는 다급히 내리막길을 되올라가기 시작했다. 피투성이인 채로 바로 내 앞에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놀라고 당황한 채로 무작정 뛰었다. 쓰러지신 분께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계시라는 말을 한 것 같은데 너무 정신없어서 기억도 안 난다. 공항도로와 구 길의 갈림길로 올라서서 지나가던 차들에 손을 흔들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처음 몇 대는 그냥 지나쳐 가더라. 마침 구 길로 향하던 차가 오기에 그 길 한복판을 막고서야 전화기를 빌려 신고할 수 있었다. 꼭 신고가 아니더라도 길 한복판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고 내리막인데다 커브까지 있어서 바로 굴다리 앞으로 가기까지는 쓰러져 있는 것이 보이지 않기에 차들의 속도를 줄이라고 신호를 해야 했었다. 삼촌역시 119에 신고를 하고 바로 달려왔지만 구급차는 그리 빨리 오지 않더라. 구급차를 기다리며 구 길로 향하는 갈림길의 한복판 위에 서서 오는 차들을 통제하던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서두르면 2분이면 올 길을 한 십분은 더 걸린 것 같다. 시골이라 인력도 적어 삼촌은 119대원을 도와 할머니를 들것에 옮기고 있었고, 여전히 나는 길 한복판에서 손을 흔들며 오는 차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퉁퉁 부어있던 얼굴이었지만, 삼촌은 분명 낮이 익은 사람이었다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농장에 계란 사러 자주 오토바이 타고 오시던 분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긴 하지만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신 분이었다.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홀로 보살피시던 분이었는데... 장날이라고 생선을 사다 할아버지께 구워드리려고 하셨나본지 쓰러져 있던 오토바이 뒤쪽에는 생선이 실려 있었다.

힘든 사람은 점점 더 힘들어져만 가는 세상이다.

기분이 뒤숭숭하고 젓가락질을 하는 중에도 손이 떨리는지라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바로 오후 일을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1월 19일이네요. 119에 장난전화하지 맙시다.’... 그래서 구급차가 늦게 왔을까...
빨리 회복하시고 나중에 우리 농장으로 계란 사러 오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Posted by 미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