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여를 기다린 끝에 나온 첫 정기휴가. 약간은, 긴 시간만큼 추억도 여운도 길리라...
25
일년에 한 번 있는 수송부 동계검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하게 이날 휴가를 나와야 했다. 그 동안 열심히 준비했으면 됐지...란 심정으로 도망치듯 부대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와서 컴퓨터를 켜본 후 좌절했다. 몇 년 동안 모아놓은 수백기가의 음원, 영상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아 그때의 허탈감이란...정말이지 휴가를 왜 나왔다 싶을정도로 좌절했었다. 휴가의 목적 중 하나는 만남, 쉼, 여행 등도 있겠지만 음악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잊자 잊어버리자...
내년에 다시 시작하자.
26
병원엘 갔다. 입대 한 후 훈련소에서 발목을 다쳤었다. 그 때 조취를 제대로 받지 못하여 의학용어로 '비골건 탈구'라는 장애를 가지고 다녔다. 지금은 크게 고통이 없지만 여전히 습관적으로 복사뼈 부근의 인대가 빠져 아무래도 수술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았었다. 아무래도 4월 중순 이후에 수술을 하게 될 것 같다. 수술을 하면 6주에서 8주는 깁스한채로 입원해야 한다.
5월에 있을 한 달짜리 훈련도 빠지겠고...좋은건가?
27
가족들과 짧게 여행을 다녀왔다. 구례쪽으로 섬진강변을 따라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역마의 주 무대인 화개장터도 들렀다. 지금은 시골의 장터가 아닌 관광지의 인위적인 장터로 변모해 있었기 때문에 뭔가 아쉬운 곳이었다. 섬진강은 너무나 맑았다. 우리나라의 좀 크다 싶은 강들 중에서 가장 깨끗한 곳일것만 같다.
강변을 따라 벚꽃길을 지날 때의 기분...
28
친구들을 만났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의 학원 친구들. 내 최고의 베스트 프렌드들은 학교가 아닌 학원친구다. 일부러 휴가를 맞춰서 나온 둘과 전역한 둘 그리고 군과는 무관한 이성친구 셋. 가장친한 이성친구의 남자친구. 끔찍하게 반가운 녀석들이었다.
어렸을 때라고 해봐야 한 오년 전 쯤. 그 때 참 좋아했던 녀석이 있었다. 지금은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네가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데리고 온 이날. 기분 참 묘하더라구...
29
오후늦게 서울에 올라갔다. 친척집에서 잠을 청했다.
30
점심 약속 전. 아침 일찍 용산으로 나와 영화를 한편 보았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영화에 대한 기대를 너무 많이 했었을까?
영화를 보는 도중 점심약속이 힘들겠다는 선배의 문자를 받았다. 뭐 상관 없었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었을 약속이었음으로. 서울 올라온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기에...
충무로에서 필름을 구입하고 그대로 인사동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화랑들을 기웃거리다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휴가 나오기 한 달 전부터 벼르던 클림트전과 카쉬전을 관람하기 위해.
세시쯤에 도착했을까. 헉 이걸 어째. 하필 한 달에 한 번 있는 휴관일이었다. 아...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하고 그 주위 햅번 누님의 대형플래카드만 연신 바라보았다. 그래 오스트리아 가서 보면 되고 보스턴 가서 보면 되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여섯시 까지 두어시간의 공백이 있었다. 어차피 친구를 만나기로 한 곳은 학교에서 가까운 곳이었기에 누가 여전히 남아있을지 모를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 동기 넷을 만났다. 한명은 미리 기별을 했었고 나머지 셋을 우연이었다. 짧지만 반가웠다. 학교도 많이 변해 있었고, 그들도 나도 많이 변해 있었다.
여섯시 반쯤 중학교 때부터의 친구를 만나 신촌으로 향했다. 신촌으로 정한 이유는 '우드스탁'에 가기 위해서... '기린아'님을 만나기 위해서. 온라인에서 만난 이들 중 처음으로 오프라인 만남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우드스탁 앞에서 얼마나 쉼호흡을 했는지...ㅎㅎ 살짝 떨리더라... 친구도 반가웠고 기린아님도 반가웠다. 우드스탁 역시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몇곡 신청해서 들었었지만 Bruce Springsteen의 Streets of Philadelphia를 들었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다.
너무나 타이트한 일정이라 다음을 기약하고 우드스탁을 나와 강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Peace와 함께 찜질방에서 하루를 마무리 했다. Peace녀석과는 언제나 현실적이고도 모든것에 대해서 가장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발이 퉁퉁 부을 정도로 돌아다녔던 하루였기에 너무 피곤했지만 늦게까지 녀석과 대화를 하다 잠들었다.
31
아침 일찍 일어나 용인으로 향했다. 용인에서 삼촌과 사촌형을 만나기로 미리 약속 돼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모인 덤, 더머 그리고 덤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는 자정에 강원도로 넘어갔다. 하필 그날 따라 강원도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던 날이었다. 그래도 나아갔다. 눈으로 뒤덥인 신세계를 느릿하게 감상하며...
1
다행히도 봄날이라 눈은 금새 녹았다. 눈, 비가 내린 후라 날은 더없이 쾌청했다. 새벽 두 시 쯤에 강을에 도착하고 세 시쯤 눈을 붙였지만, 갈길이 멀어 아침 일찍 움직여야했다. 오죽헌을 들렀다. 설악산으로 향했다.
화창한 봄날. 눈덮힌 설악을 오르게 될 줄이야...
동해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왔다. 경주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그냥 지나쳐야 했다. 해운대 앞에서 숙소를 잡고, 자갈치 시장으로 향했다.
여행 중 가장 비싸고 맛은 최악이었던 식사였다. 경남인들에게 미안하지만 정말 맛없었다. 전국을 한바퀴 뺑 돌면서 느낀 것이지만, 경상도가 최악이었다.
2
해운대 해변을 거닐고 바닷물에 신발을 빠뜨리고 마지막 목적지 진해로 향했다. 인파도 많고 규모도 큰 군항제였지만, 벚꽃 구경하려고 진해까지 오느니 섬진강변의 벚꽃길을 택하겠다.
저녁 늦게 광주에 도착했다. 집 앞에서 삼촌, 사촌형과 헤어졌다. 즐거웠던 여행이었다. 언제 다시 덤, 더머 그리고 덤스가 모여 이런 여행을 또 가볼까...
3
복귀 한시간 전. 이 주체하지 못할 심란한 맘 상태를 간신히 추스리고 이번 휴가를 생각해 본다. 성의없게 대충 끄적이고, 여유가 없어 사진들을 못 올림을 아쉬워 하고, 남은 열 달을 헤아려 본다...
이번 휴가. 여러 잊지 못 할 만남들...여행과 추억들...

